유흥식 추기경님 그리고 천주교 해미순교성지
안녕하세요.
임인년(壬寅年) 무신월(8월, 戊申月) 계축일(28일, 系丑日) 서산 해미읍성에 이은 여정으로 해미순교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해미 순교 성지는 조선 시대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수많은 신도들이 처형당하고 서양의 침입으로까지 이어졌던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Haemi Martyrs' Shrine)
순교의 뜻은 한자어 따라죽을 순(殉) 가르칠 교(敎) 그대로 본인이 믿는 종교, 즉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해미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처형했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해미순교성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였습니다.
조선의 박해 역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 1791년 신해년(辛亥) 정조 15년 신해박해(진산의 양반 윤지충, 권상연이 처형된 사건)
- 1797년 정사년(丁巳) 정조 21년 정사박해(중국인 주문모 신부 수배와 함께 충청도 천주교 신도들이 처형된 사건)
- 1801년 신유년(辛酉) 순조 원년 신유박해(주문모 선교사와 100여 명의 신자가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된 사건)
- 1839년 기해년(己亥) 헌종 5년 기해박해(프랑스 선교사와 신자 100여명 처형)
- 1846년 병오년(丙午) 헌종 12년 병오박해(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사건)
- 1866년 병인년(丙寅) 고종 3년 병인박해(프랑스 선교사 8명과 신자 8천여명 처형되고 병인양요의 발단이 된 사건)
해미순교성지는 1797년 정사박해부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새남터, 절두산, 해미읍성에 이르는 1872년까지의 조선의 박해 역사에서 희생된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장소입니다.
조선 시대의 순교자 약 1만명 가운데 충청남도 서북부 내포 지역의 1천여 명 이상이 순교한 곳이지만, 충천 관아의 막강한 지방 권력으로 중앙에 보고 없이 대부분의 순교자들을 처형하여 이름도 모르는 순교자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최근까지 132명의 순교자 명단이 밝혀졌으며, 인언민(마르티노), 이보현(프란치스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비오) 3분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諡福:교황의 공식 선언으로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 전 단계인 복자의 칭호를 허가하는 것)되었습니다.
1935년 프랑스 범 베드로(발오, Barraux) 신부님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게 되었고, 뼈와 치아, 머리카락 등이 기념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발오 신부님은 1930년 한국으로 입국하시어 해미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였고,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병자성사와 봉성체를 베푸는 과정에서 감염되어 선종하셨다고 합니다.
해미순교성지는 여숫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순교자들의 행렬에 바쳤던 "예수마리아" 기도소리가 당시 구경을 하던 사람들에게 "여수 머리"라 들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미지역에는 신앙선조들이 압송되었던 "한티고개성지"와 투옥, 고문, 처형이 있었던 "해미읍성 성지", 자리개 돌 처형이 자행된 "서문 밖 성지"가 있습니다.
주차 정보를 공유드리자면 순교성지 뒷편 골목길의 주차장 사용이 가능하며 도착하시면 아래와 같이 안내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해 당시 처형 방법은 사약, 몰매, 교수, 참수, 동사와 함께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는 생매장과 물에 빠트려 처형하는 수장 형장과 같이 다양했다고 합니다.
성지 내에는 수장형장이 행해졌던 진둠벙과 자리개 돌 처형터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생매장 당한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순교탑, 복자상, 노천 성당과 함께 십자가의 길 14개의 조각을 천천히 돌아 참배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탄압 받던 조선의 천주교는 1886년 병술년 고종 23년에 조불 수호통상조약 당시 프랑스 측의 요구로 정식으로 선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서임 (樞機卿)
교황 요한 바로로 2세는 추기경의 붉은색 옷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건히 하고 가톨릭 교회의 발전과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는 용기와 행동을 나타낸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인 추기경은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국제 귀빈급 의전을 받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이중 국적이 허용되는 직위입니다.
추기경의 어원은 경첩을 의미하는 cardo에서 유래하여 Cardinalis, 교회의 중추가 되는 역할을 뜻합니다.
추기경은 교황의 선거권을 가지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서 탄생한 직책이기도 합니다.
추기경은 품으로 아래와 같이 나누어집니다.
- 주교급 : 로마 관구에 속하는 7개 교구의 교구장(6명), 동방 가톨릭 교회 총대주교 3명
- 사제급 : 로마 주요 성당의 주임 사제 명의, 전 세계 지역 교구장 주교 중 임명, 대다수 추기경이 해당
- 부제급 : 로마의 주요 성당의 부제 명의, 10년 후 사제급으로 승격
한국인 추기경의 역사는 이번에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서임으로 네 번째를 맞고, 유흥식 라자로의 서임은 서울이 아닌 대전 교구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된 최초의 경우라고 합니다.
- 김수환 스테파노 (1969년 47세~ PRO VOBIS ET PRO MULTIS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 정진석 니콜라오 (2006년 74세~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 염수정 안드레아 (2014년 70세~ Amen. Veni, Domine Jesu!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 유흥식 라자로 (2022년 5월 70세~ LUX MUNDI 세상의 빛)
그 외에도 인 팩토 레 추기경이라는 교황만 알고 있는 가슴속 추기경과 교황과 추기경단까지 공개되는 비밀 추기경이 있다고 합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이후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의 흔적이 서산 해미읍성과 순교성지에도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자 기꺼이 목숨을 던진 순교자들의 진심을 잠시나마 느껴보며 포스팅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