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10 천간 중 여덟 번째 "신(辛)" 그리고 신미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덟 번째 천간 신(辛)의 속성
신(辛)은 여덟 번째 천간이며, 음양오행(陰陽五行) 중 음(陰)의 기운과 금(金)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음금(陰金)의 속성을 가진 12 지지는 유(酉)이며, 방위는 서(西), 가을(秋)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辛)도 경(庚)과 동일하게 금(金) 속성의 순환이지만 음(陰)의 기운으로 흩어져 후퇴하므로 12 운성(運星)을 역행(逆行)하게 됩니다.
천간 중 세 번째 병(丙)과 합을 이루어 수(水)의 속성으로 변하고 권위지합(權威之合)이라고도 합니다. 천간끼리 7위의 사이인 정(丁)과는 극(剋)이 됩니다.
◈신미년(辛未年) 흰 양의 해
60갑자 중 여섯 번째 해인 기사년은 60으로 나누어 나머지가 11인 11년, 71년 ~ 1931년, 1991년, 2051년입니다.
오행 중 신금(辛金)의 백(白)의 기운과 12 지지 중 미(未)가 합쳐져 흰 양의 해라고 합니다.
천간 신(辛)과 짝이 되는 지지(地支)는 음의 속성을 가지는 지지 여섯 개 미(未), 사(巳), 묘(卯), 축(丑), 해(亥), 유(酉)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신미년(辛未), 신사년(辛巳)년, 신묘년(辛卯), 신축년(辛丑), 신해년(辛亥), 신유년(辛酉)만 존재하게 됩니다.
납음(納音)은 경오년과 동일하게 노방토(路傍土)로 사물들이 흙을 덮고 있는 모양새이며, 경오의 오화(午火)가 신미의 토(土)를 생하며 토의 기운이 강하며 스스로 왕성한 기운입니다.
◈신미년(辛未年) 흰 양띠해가 가지는 특성은?
기사년 흰 양의 해는 자신에게 엄격함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엄격함으로 억지를 부리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성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오행 금(金)의 기운으로 의리와 결단력을 갖추었으며 흉신으로 폭악하거나 안하무인 할 수 있는 운세입니다.
◈1811년 신미년 홍경래의 난
1811년 신미년 조선 순조 11년에 평안도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홍경래의 난의 주된 원인은 서북 지역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잦은 침략 전쟁이었습니다.
사대부로 뿌리 깊은 조선에서는 서북 지역을 유배지로 지정하거나 서북 지역 사람들은 높은 벼슬에 이용하지 말라는 등 지역 차별이 빈번하였습니다.
서북 지역에 대한 수탈 방법으로는 매향(賣鄕:상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뜯어내어 향직을 맡기는 행위 / 매관매직)과 민고(民庫:청나라 사신을 보내는 연행의 경비를 지방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창고)가 성행하였는데 관직을 미끼로 돈을 뜯어낸고 민고를 관직을 산 상인들에게 추가 전가하는 이중 수탈 방법이었습니다.
홍경래는 서북 지역 출신으로 과거에 실패하고 풍수지리가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게 되었는데 서북 지역에 대한 수탈과 차별에 저항하여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민란의 서막을 열었다는 데 역사적 큰 의의가 있습니다.
10년간 홍경래, 김사용, 우군칙, 김창시, 이희저 등이 철저한 준비로 파죽지세로 8개 고을을 점령하며 5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난은 정부 편 의병과 조정 파견 무사들을 필두로 한 관군의 북상으로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홍경래 살해를 도모하였던 김대린, 이인배의 습격으로 홍경래가 칼에 맞으면서 전열이 흩어지고, 안주성을 공략하지 못하고 관군과의 전투에 패해 정주성으로 피하게 됩니다.
관군의 민간인 학살에 맞서 백성들까지 합세해 정주성을 사수하려 하였으나, 폭약을 사용해 성벽을 폭파 시킨 후 성은 함락되었고 홍경래 역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정주성이 함락되고 체포된 이들 대다수가 처형당했다고 하니 조정의 분노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민란의 시작이 되었다는데 홍경래의 난의 의미가 있습니다.
◈1871년 신미년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년 신미년 발생한 신미양요는 미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입니다.
1866년 병인년 병인양요가 있기 몇 달전 8월 21일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대동강을 통해 평양에서 통상을 요청하였으나, 짚단을 잔뜩 실을 작은 배들에 둘러싸여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일본에 이어 조선도 강재로 개항시키려고 마음먹게 됩니다.
신미양요 첫번째 교전은 1871년 6월 1일 강화도 수로인 손돌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포격 소리만 무성할 뿐 실제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를 시작으로 6월 10일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이 덕진진과 초지진을 상륙 점령하여 육로와 전함을 동원한 포격으로 광성보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전력으로 비교할때 싸움이 될 수 없었던 이 전투는 광성보 군대의 전멸이라는 아픈 참패를 기록합니다.
조선의 총은 불이 붙여 총알을 발사하는 화승총이었고, 미군은 신식 소총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화포는 단순 타격에 불과하였으나, 미군의 포탄은 폭발에 위력까지 더하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군은 미군의 소총 공격에 대비해 방탄복으로 면을 겹겹이 둘러 싼 면제배갑을 입고 총이 없으면 칼로, 그마저도 없으면 돌, 흙을 던지며 처절하게 전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병헌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광성보 전투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 미군 장교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치는 김태리와 사랑을 나누는 스토리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은 전리품으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장수기)를 가져가는데요. 현재는 우리나라로 대여 형식으로 반입되어 강화 전쟁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단번에 조선을 개항시키려던 미군은 광성보 전투에 질리고, 이렴의 야간 기습, 그리고 식수 부족과 풍토병에 못 이겨 6월 11일 철군을 결정합니다.
3일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원군은 척화비를 전국에 세우게 되었으나, 344명 이상이 전사하였고, 동일한 방법으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본의 작전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1931년 신미년 만주사변(滿洲事變)
만주를 병참 기지와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인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류탸오후 사건을 계기로 시작됩니다.
일본의 관동군의 공작으로 류타오후에서 철도가 폭발하였고, 이를 계기로 펑텐성을 공격하게 된 관동군은 21일 남만주를 통째로 손에 넣게 되었고, 1932년 3월 만주국을 성립시켰습니다.
만주 사변은 1937년 7월 7일부터 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지속된 중일 전쟁의 시작이자 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이었습니다.
1991년 신미년에는 중국에서 FIFA 여자 월드컵이 최초로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다가오는 2051년 신미년에는 태평양 전쟁이 110주년을 맞이하고, 1.4 후퇴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신미년에는 전쟁 관련 이벤트가 많이 발생했었네요.
더 이상 전쟁 없는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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